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효고현 남부 지진 (문단 편집) == 지진 발생 후 == [[육상자위대]] 인원과 장비가 대거 투입돼 구조 및 복구를 지원하고 [[전투식량/일본|전투식량]]도 이재민들에게 불출했다. [[해상자위대]] 또한 [[호위함]]들을 보내 고베항에 입항시켜 차출된 승조원들이 육자대를 지원하고 [[호위함]]의 조수기와 취사 시설, [[보일러]], [[목욕]] 시설을 활용한 구조대 및 이재민에 대한 지원을 했다. 함내 목욕 시설은 위생 문제 해결 외에 전투식량을 데우는 것에도 요긴하게 쓰였다고 한다. 세계 구호 단체들도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는 공식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하였으며 [[김영삼]] 대통령이 당시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일본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에게 위로전을 보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해당 재난을 추모하는 뜻에서 지진이 발생한 다음 날인 1월 18일 수요일에 '[[수요집회]]'를 중단했다. [[사카키바라 사건]]의 범인 아즈마 신이치로가 1995년 초등학교 졸업문집에 무라야마 도미이치 총리 때문에 지진의 초동 대응이 늦어진 것을 비난하는 글을 썼다.[* 어느 정도였냐면 마치 무라야마 총리에게 복수를 하려는 듯한 수준의 글이었다.] 나카무라 에이치 일본 참의원 의원은 사건 이후 일어난 화재가 [[재일 한국인]]의 방화일 수도 있다고 망언해 물의를 빚었으며 이로 인해 [[민단]]과 한국특파원 회견에까지 나가 사죄를 표해야 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3748177|KBS]], [[http://imnews.imbc.com/20dbnews/history/1995/1947311_19450.html|MBC]]) 이후 [[2016년 구마모토 지진]] 직후에도 [[관동대학살]] 당시처럼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는 소문이 다시 나돌았다.[* 악플이라고 보면 된다. 범인도 사회 부적응층이었고 우물을 식수원으로 사용하는 세대는 21세기에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고베 대지진 직후 [[닛케이 225|닛케이 지수]]는 급락했는데 여기에 연동된 닛케이 225 지수 선물 매수포지션에 옵션 양매도를 취한 [[닉 리슨]]도 이 대지진으로 인해 망하고 230년 역사를 지닌 영국의 베어링 은행을 파산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대지진이 엔화 가치를 급등시켰는데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한 엔화 매입과 재건작업을 위한 엔화수요 급증 등이 원인으로써 미국 달러에 대해 20% 급등, 즉 80엔~70엔대로 진입하였으며 이후 일본 정부가 개입하여 서서히 장기적으로 엔화 약세로 진입하였다. 문제는, 플라자합의 이후 지속적으로 엔고가 유지되어 1995년까지 슈퍼 엔고상태였던 아시아 무역시장에 고베 대지진이 터지자, 일본은 당시 미국 재무부 장관 로버트 루빈에게 엔저 전환을 위한 외환시장 개입 허용 요청을 하고 마침 금리인상기였던 미국이 이를 들어주면서, 이미 이전부터 자국 대출금리보다 낮은 저금리 엔화,달러화 채권을 엔고만 믿고 잔뜩 투자했던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10년만에 끝난 엔고에서 엔저 전환으로 인해 경상수지 적자 폭탄을 얻어맞고, 금융시장이 개방되어있던 태국은 그 혼란을 노린 [[조지 소로스]]등 환투기 세력들이 달러 페그 고정환율제로 묶여있던 바트화를 공격해 어마어마한 이득을 취하고, 태국 정부는 결국 IMF행을 선택하게 된다. 당연히 태국의 붕괴는 동남아시아 전체의 단기외채 위기로 이어졌고 월가는 아시아에서 도망쳐야한다는 레포트를 계속 내고 있었다. 문제는 똑같이 장기 엔고를 낙관하고 있었으며, 태국과는 달리 금융시장이 폐쇄되어 있어 해외 헤지펀드들의 환치기공격을 받지 않을 거라고 안심하던 한국 또한 알고보니 약달러,엔고시절 미국,일본의 저금리를 믿고 [[종합금융회사|종금사]]들이 달러,엔화 단기 차입후 원화로 환전해 국내 기업에 대출하는 돈놀이를 하고 있었고, 이 종금사들이 고금리 전환과 엔저전환으로 모두 무너지면서 어마어마한 경상수지 적자가 들이닥쳤고, 한보부터 시작해 기아자동차까지 줄줄이 무너지면서 위기가 현실화되었으며, 당시 한국의 고정환율제를 조정하기 어려울 만큼 미국와 외교마찰이 심각했던[* 원인은 [[김일성]] 사망 후 지속적으로 생겨난 북한 핵문제 압박 때문이다. 여기에 1996년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때 연이어 터진 [[로버트 김]] 간첩사건으로 양국의 외교 갈등이 크게 악화되었다.] 상황에서 일본도 지원을 거절해 일본 자금까지 빠져나가면서 한국도 결국 [[1997년 외환 위기]]가 현실화 되고 만다. 결국 고베 대지진은 닛케이 폭락으로 인한 베어링 은행 파산은 물론이고, 2년뒤 아시아 전체의 금융위기를 일으킨 트리거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이 지진으로 고베항의 기반시설이 무너지면서 환적하물들이 대거 이탈하여 [[부산항]]이 그 역할을 이어받았다.[* 다만 이후 중국 항구들의 물동량 취급이 급성장하면서 부산항의 물동량 순위는 4~5위로 내려왔다.] 이 지진 이후 소니가 [[소니/라디오#s-4.8|비상충전기능이 있는 라디오]]인 ICF-B200[* FM/TV 76.0 ~ 90.0MHz/1 ~ 3CH(90 ~ 108MHz), MW 530 ~ 1602kHz 다이얼 방식 튜닝](2016년 기준 ICF-B09의 전신격)을 1995년에 발매했다는 후문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